“아니오” 라는 답을 들으면 계속 도전하라. 김종구 회장 회고록 Part .2

Kevin Lee

캠핑카 안에 있던 샘플제품들이 모두 없어졌다

모두 가져갔다. 잠시 당황도 하고 억울하기도 했지만, 마음을 추스르니 더 큰 일 당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예전 일부 소매점 점주들은 소위 ‘게토’한 지역에서 용감하게 장사하고 있었다. ‘게토’. 이른바 안전하지 못한 거주 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원래 게토라는 말은 나치 독일 시절 유대인들이나 집시들을 따로 가두어 놓았던 구역을 말한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흑인들이나 인도 사람들을 따로 가두어 살게 만든 곳도 게토라고 불렸었다.

세일즈를 다니면서 내가 접했던 지역 일부는 이런 게토라는 말이 사용되고 있었다. 특히 우리의 고객들이 몰려 살고 있는 거주지역은 이러저러한 이유로 집값이 싸거나 낙후되는 곳이 많고 주로 흑인들만의 거주 구역이 되는데 슬럼이라고 불리는 곳들이기도 했다.

그 슬럼화된 곳 중에서도 범죄율이 특히 높은 곳을 게토라고 하는 것이다. 디트로이트, 시카고, 달라스, 뉴욕 같은 대도시에 게토라 불리는 곳을 찾을 수 있다.

잘못된 생각이 장사를 망친다

내가 도둑을 맞았던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소매점 점주들은 그들의 일상생활에서 작은 도둑들을 매일같이 만나는 편이었다.

일부 사람들은 흑인들이 ‘열심히 살려는 의지가 없다, 가치관이 다르다’ 라는 혹평들을 내뱉는다.

“이곳에서 몇 년만 일하면 눈빛만 봐도 얘가 도둑질하려고 왔구나 하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엄마가 어린 애들을 데리고 와서 도둑질을 가르친다. 그 장면들을 보고서 난 흑인은 영원히 비전이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사실, 흑인들의 범죄율은 다른 인종들과 비교가 안 되는 수준으로 높다. 이 범죄율에 기여하는 가장 큰 요소가 마약이라는 발표를 들었다. 마약을 구하기 위해 범죄를 저지르고 마약을 팔기 위해 범죄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럼 모든 흑인들이 다 이렇게 살아갈까? 그것은 절대 그렇지 않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어떤 이들은 꿈 없이 인생의 바닥에서 살아가나, 이와 달리 성공하는 흑인들도 있다. 나는 아직도 소매점주들을 만나거나 우리 직원들에게 말한다.

“흑인 손님들을 보며 편협된 생각을 하지 마라.  백인도 아시아인도 도둑이나 강도는 다 있다. 그들이 없다면 우리도 없다. 항상 친절하게 응대하라.”

집념이 있으면 매출을 올린다

세일즈 직원은 최선을 다해 매출로 결과를 인정받으면 회사에서 보너스에 꿀맛 같은 휴가까지 보장되는 꽃 길을 걷는다. 그러나 매출이 없거나 떨어지면 압박 붕대처럼 조여 오는 실적 압박에 고통받으며 주급만을 구원으로 여기게 된다.  

그 뿐만 아니다. 일부 세일즈맨들은 입사 후, 담배만 늘었다고 한다. 학연, 지연 다 동원해 만난 소매점 사장님과 술 마시다가 실적 대신 소맥 제조력만 늘었다고 한다.

뷰티 업계 선배로서, 그리고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으로서 좌절한 직원들에게 나는 말한다.  성공하겠다는 집념이 있어야 세일즈를 할 수 있다. 그리고 소매점 점주에게 최선을 다해 친절해야 당신은 성공할 수 있다.

여러 실수를 하면서 성장해갔다

나도 세일즈를 시작할 때 여러 실수를 하면서 성장해갔다. 한번은 어느 가발매장에 들어가 가져온 샘플을 꺼내 소매점주에게 보여주며 신나게 제품 자랑을 할 때였다.

“사장님, 제가 꺼내고 있는 이 가발이 요즘 최신 스타일의 제품입니다.”

“…………………..”

말이 없으신 그 사장님을 바라보며 무엇이 잘못된 지도 모르고 계속 설명했다.

“사장님. 이 가발이 다른 가발보다 통풍도 잘되고 캡도 잘 만들어서 좋습니다.”

“아 그래 잘 알겠네. 그런데 자네가 들고 있는 가발을 한번 보게나.”

“네?”

“무엇이 잘못된 지도 모르지? 자네가 지금 나에게 보여주고 있는 가발 스킨탑이 거꾸로 됐네. 가발 앞뒤도 구분 못 하면서 지금 나에게 가발을 파나?”

“아…죄송합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부끄럽다. 하지만 그러한 실수가 있었기에 내가 성장했다는 사실을 믿는다.

세일즈를 잘하고 싶으면 인내가 필요하다

또 다른 에피소드 하나. 소매점 점주들마다 성격은 천차만별이었다. 어떤 이는 급하고 어떤 이는 불 같았다.

“사장님, 이번에 새로 나온 가발 제품인데요. 한번 보세요.”

“바빠요! 바쁘다고 했잖아요!”

“압니다. 하지만 저에게 조금만 시간을 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사람, 정말로 안 되겠네!”

순간, 내 눈앞으로 번쩍이며 가발이 날아왔다. 소매점 점주가 내 얼굴에 가발을 집어 던진 것이다. 피가 거꾸로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눈물도 핑 돌았다.

‘내가 이렇게까지 하며 먹고 살아야 하나…’

진심, 그 사장님에게 대들고 멱살이라도 잡고 싸우고 싶었다. 그러나 입술을 깨물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웃으며 인사하고 그 매장을 나갔다.

며칠 후, ‘그래 나는 세일즈맨이다. 세일즈에 미친 놈이다’ 라고 나 자신을 세뇌하며 그 매장을 또 방문했다.

“사장님! 저, 또 왔습니다.”

“아 네 왔어요…”

잠깐의 침묵이 흐른 뒤 그 사장님이 말했다.

“미스터 김이 우리 매장에 없는 가발들 파악해서 보내주세요.”  

“감사합니다! 오더 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자는 말했다. 세일즈를 잘하고 싶으면 인내가 필요하다고. 소매점 점주의 욕구를 날카롭게 찾아내어, 마음을 움직이는 해결책을 제시해야 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세일즈맨에게 인내가 없다면 절대 성공할 수 없다.

그 뿐만 아니라 세일즈맨은 없는 제품 구해 달라고 떼쓰는 소매점 점주들도 다른 거래처에 수소문해 제품을 구해다 줘야 한다.

이처럼 길거리 33전짜리 햄버거를 입에 물고 발바닥에 불 나게 뛰어다녔던 나는 세일즈맨이었다.

한인 특유의 끈기와 성실성이 빛을 발하던 가발 매장

나의 세일즈 활동 지역은 전국구였다. 그러나 아무래도 정이 많이 가던 지역은 회사가 위치해 있던 시카고였다. 당시만 해도 시카고는 다운타운 아래로 형성된 흑인 밀집 지역에 한인들이 적은 자본으로도 시작이 가능했던 가발 판매 매장과 옷 가게, 보석 가게 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약 2~3천 불만 있어도 작은 매장을 시작할 수 있었으며 이곳에서 한 가족의 생계비는 벌 수 있었다. 더욱이 가발 매장은 전문성도 중요했지만 한인 특유의 끈기와 성실성이 빛을 발하던 사업이었다. 유창한 영어를 못 해도 한인들은 특유의 친화력으로 흑인 손님들을 단골로 만들었다.

이들 소매점들에 제품을 공급하는 도매상들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내 주관적인 견해로 이런 일들이 한인사회를 일으키는 데 한 몫을 차지하게 되었다고 본다. 이렇게 한인사회가 커짐에 따라 자연발생적으로 이에 부수적인 사업들인 금융 관계, 여행사, 부동산, 회계사, 식당 등 한인을 상대로 하는 사업이 성하게 되었다. 이에 뷰티 관련 사업의 규모도 자연 커지게 되었으며 다양하게 되었다.

가발에 ‘가’ 자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세일즈를 하면서 다니다 보니 어느 소매점 점주는 한국에서도 세일즈를 해봤냐고 질문했다. 또 학교에서 배운 학문이 혹시 세일즈와 관련된 학문이었냐고 질문한다. 사실, 나는 가발에 “가” 자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대학에서 배운 학문도 세일즈와 무관한 것이었다.

내가 태어난 고향은 대한민국 경상북도 서북부에 있는 문경이다. 옛날에는 석탄으로 유명하던 도시였다. 그러던 도시가 이제는 폐광자원을 관광지로 개발하면서 관광 명소로 거듭났다.

뷰티 업계에는 문경에서 태어난 이들이 여러 명 있다. 그래서 나는 내 고향을 자랑스러워한다.

-다음호에 계속